리처드 스톨만

스톨만은 1953년 3월 16일, 엘리스 립맨과 대니얼 스톨만의 아들로 맨해튼에서 태어났다. 1960년대 그의 고등학교 저학년 시절에 처음으로 개인용 컴퓨터를 접해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그리고 지금은 사라진 시내에 있던 연구소인 IBM 뉴욕 과학센터에서 일하면서, 스톨만은 고등학교 졸업 후의 여름을 보냈고 거기에서 그의 첫 번째 프로그램인 IBM 7064를 위한 전처리기(pre-processor)를 PL/I 프로그래밍 언어로 작성했다. 다음과 같이 그는 회상했다. "나는 첫 프로그램을 PL/I로 작성했다. 그 뒤, 그 프로그램이 그 컴퓨터에 맞지 않을 만큼 커졌을 때 어셈블리어로 다시 고쳤다" 1971년에 하버드 대학의 신입생으로 스톨만은 MIT 인공지능 실험실의 해커가 되었다. 1980년대, 스톨만의 삶이었던 해커 공동체가 소프트웨어 산업의 상업화로 인해 점차 사라질 위기에 처하기 시작했다. 특히, 실험실 내의 다른 해커들은 심볼릭스(Symbolics)라는 회사를 차리고는, 기존의 자유 소프트웨어를 그들만의 독점 소프트웨어로 바꾸는 작업을 적극적으로 시도했다. 1983년에서 1985년 사이의 2년동안, 스톨만은 연구실 내에서 혼자 힘으로 심볼릭스의 결과물들과 똑같은 기능의 프로그램을 작성하여 그들의 독점을 막는 일을 계속했다. 그러나 그 당시 이미 그는 그의 세대 중에서 마지막 해커였다. 그는 비밀 유지 합의서에 사인하기를 요구받았으며, 그의 원칙인 다른 이들과의 공유나 이웃을 돕는 것에 위배되는 작업들을 수행할 것을 요구 받았다. 1985년, 스톨만은 GNU 선언문을 발표했다. 이는 유닉스에 대항하여 자유로운 대안을 만들기 위한 그의 의지와 동기를 역설한 것이었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그는 비영리 기관인 자유 소프트웨어 재단을 설립했다. 그리고 그는 1989년 일반 공중 사용 허가서(GPL) 내에 카피레프트의 개념을 적용하였다. 허드(Hurd) 커널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GNU 시스템이 거의 동시에 완성되었다. 1991년, 리누스 토르발스는 GPL로 리눅스 커널을 발표했다. 이를 통해 완벽하게 기능하는 GNU 시스템인 GNU/리눅스 운영 체제가 탄생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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